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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1 운영자 20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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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6:35-38절 개역개정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지난 시간, 우리는 원수 사랑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원수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고, 이는 곧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통로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 가르침은, 성령의 은혜를 경험한 후 스데반 집사님처럼 순교하는 순간에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오늘 말씀 역시 원수 사랑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핵심 구절은 38,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도로 받을 것이다"입니다. 이는 곧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강조하며, 예수님은 비판/정죄와 용서/베풂이라는 두 가지 대조적인 예를 통해 이를 설명하십니다.

 

본문에서 '비판'은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고 단정짓는 '판단'에 가깝습니다. 비판은 필요하지만, 타인의 가치를 재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입니다. 또한, '정죄'는 누군가를 죄인으로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과연 누가 다른 이를 함부로 정죄할 만큼 깨끗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판단과 정죄는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판단과 정죄가 아닌 용서와 베풂입니다. 주기도문에도 나와 있듯이, 타인의 죄를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너그럽게 베풀고 먼저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 따라 하나님께서 동일한 방식으로 갚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용서와 베풂의 ''를 사용할 때, 하나님은 그 이상의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왜 우리는 비판을 멈추고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요?

 

1. **나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허물과 약점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2. **판단의 한계:**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판단은 종종 편파적이며, 상대방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하지 못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 비판의 동기는 종종 미움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하기 전에 그 사람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 **궁극적인 심판자는 하나님:** 타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판정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판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1.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꼴:**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가르치려는 자들은 결국 자신과 따르는 자 모두를 구덩이에 빠뜨립니다. 진정한 스승은 오직 예수님뿐이며, 우리는 그분에게서 용서와 베풂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2.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 타인의 작은 티는 현미경처럼 잘 보면서, 자신의 크고 심각한 문제는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머리로는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실천하기 어려워합니다. 우리는 용서와 베풂의 삶을 살 수 없는 존재일까요?

주님은 우리의 됨됨이, 즉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못된 열매를 맺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됨됨이가 좋은 나무로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거듭남'을 통해 가능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좋은 열매, 즉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여전히 살아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없어지고 내 안에 성령님이 사셔야 합니다. 그래야 못된 나무가 좋은 나무로 바뀌고 자연스럽게 용서와 베풂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라기는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을 만져 주심으로, 용서와 베풂의 삶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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