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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0 운영자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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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20:11-14절 개역개정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이며, 부활은 그 사랑의 능력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성경은 십자가와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공개적으로 진행된 처형이었기에 수많은 목격자와 역사적 기록을 통해 그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에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집행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은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목격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증인이 필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 경험한 사람만이 그 놀라운 사실을 세상에 증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왜 하필 막달라 마리아였을까요?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당했고 제자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베드로와 요한 역시 무덤을 확인했지만, 두려움에 휩싸여 돌아갑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홀로 남아 슬픔에 잠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십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나 제자들이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하고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 일곱 귀신 들렸던 병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신뢰받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마가복음은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왜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무덤을 찾았고, 시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슬픔에 잠겨 통곡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슬퍼한 이유는 오직 하나,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받던 마리아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삶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그 사랑을 온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의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지 잊고 살아갑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을 모른다는 것이고, 주님을 모른다는 것은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현재 우리 삶에 역사하고 있음을 믿고, 그 소망 안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명령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마태는 칼에 맞아 순교했으며, 마가와 도마는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수많은 신자가 맹수의 밥이 되면서도 찬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과 우리는 동일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용기를 내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못할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초대 교회의 부활 신앙과 우리의 부활 신앙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에는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명예나 권력,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십자가 은혜 안에서 거듭난 인생임을 기뻐하고, 초대 교회 신자들처럼 세상의 핍박에 굴하지 않고 평생토록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결단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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